얼마 전부터 등산을 시작했다. 사실 등산이라고 해도 그냥 '걷기 운동을 하는데 그 장소가 산이었다.'라는 느낌이다. 장비를 살 것도 없이 평소 입던 옷에 신발만 새로 사서 신고 야트막한 언덕이나 걷는 것이다.
그나마 조금 더 취미라고 할만한 부분은 언제나 새로운 장소를 찾아서 돌아다닌다는 것 정도다. 일반적인 등산 코스가 아닌, 어딘가의 동네 뒷산, 시골구석에 있는 산인지 동네인지 경계가 불명확한 언덕. 그런 곳을 찾아다닌다.
가끔 길을 잃는 경우는 있었지만 워낙 낮고 좁은 곳들이라 위험한 일은 없었다. 생각보다 깊이 들어가 고생한 적도 있지만 어찌어찌 잘 나왔다.
오늘도 적당히 차를 몰고 시골 동네 아무 곳이나 찾아서 걷기 시작했다. 일기예보와는 다르게 비가 오기 시작했지만 안개처럼 내리는 부슬비 정도다.
비 오는 날 등산은 위험하다지만 고작 이런 곳을 돌아다니니 상관없었다. 비가 많이 오는 것도 아니고, 나름 길도 잘 나 있는 곳이다. 조금 어두운 게 문제지만 평소보다 일찍 내려오면 그것도 큰 문제 없으리라.
슬슬 언덕을 오르는데 위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 등산객으로 보이는 복장이다. 아무리 외진 곳으로 다녀도 이렇게 가끔은 등산객을 마주친다.
인사차 말을 걸어보았다.
"얼마나 걸리나요?"
"이제 시작이에요."
확실히 오르막이 시작된 지 몇 분 지나지 않았다.
또 30분 정도를 가니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이 내려오고 있었다.
"얼마나 남았나요?"
"한 반 남았나?"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았는데 정상까지 길이 좀 돌아서 가는 모양이다.
한참 가다 보니 갈림길에서 또 한 사람이 보였다.
"이제 끝인가요?"
"네. 거의 끝났어요."
"아, 그래요? 어느 쪽으로 가야 하나요?"
"이쪽이요."
이제 다 왔다고 하니 힘을 내서 그 사람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갔다. 점점 어두워지고 있지만 금방 정상을 찍고 내려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줄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정상은 보이지 않았다.
역시 등산객이 다 왔다는 말은 다 거짓말인가 싶기도 하고, 묘하게 내리막이라 길을 잘못 가르쳐준 건가 의심도 하고 있다 보니 길이 끊겼다.
대신 넓지 않은 공터가 나왔다. 아무리 봐도 정상은 아니다. 길을 잃었나 싶었는데 다행히 한 사람이 앉아 있어 길을 물어보러 갔다.
"저기......"
"어이구. 이제 다 끝났는데 오셨네."
그 옆에는 아직 핏기가 남은, 군데군데 뻘건 살점이 붙은 사람의 뼈 무더기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