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또 어딜까? 처음 보지만 이상하게 익숙한 천장을 보는 게 몇 번 째일까.
그 이전에 난 누구일까? 안개가 낀 듯 머릿속이 뿌옇지만 곧 괜찮아질 거다. 이번에는 누가 된 것인지도 조금씩 생각날 거다.
어제까지는 50대 아줌마였다. 한 달 정도 전에 변해서 나름 열심히 살았다. 두 아이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보험 일도 열심히 했고, 둘째의 생일을 챙겨준다고 일찍 집에 들어가다가......
거기서 기억이 끊겼다. 어떻게 된 걸까. 생각해 보면 계속 이런 식이었다. 새로운 기억과 몸에 적응하여 충실히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다른 몸이다.
그 전에는 입시를 준비 중이던 10대 학생이었다. 엄마는 괜찮을까? 아빠도 걱정을 많이 할 텐데......
또 그전에는 30대 회사원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내가 기다리고 있을 텐데......
그리고 그전에는......
모르겠다. 몇 번이나 기억이 덧씌워진 탓인지 그전의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다행인 것은 기억이 떠오르면 금방 적응이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전의 삶은 그냥 꿈이었을 지도 모른다. 아주 생생한 꿈.
"아, 맞다! 면접!"
바보같이 오늘이 면접인 것도 잊고 있었다. 지금 이상한 꿈이 문제가 아니다.
"어? 뭐더라?"
무언가 중요한 생각을 했던 것 같지만 역시 꿈은 정신 차리면 사라지는 모양이다. 뭔가 굉장히 생생한 꿈을 꾼 거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역시 지금은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중요한 건 면접이지.
정신없이 씻고, 옷을 입고, 빼먹은 게 없는지 확인하고......
나름 면접을 잘 봤다고 생각하지만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대답도 술술 잘 나오고, 면접관들 반응도 좋아서 이번에야말로 됐다고 생각했는데.
"하아, 진짜 왜 이렇게 살기 힘드냐."
결과 통보가 나온다는 3일 동안 굉장히 들떠있었다. 친구들에게 큰소리도 좀 치고, 부모님께도......
3일이 지나고, 4일, 5일이 돼도 연락이 안 와서 먼저 전화를 했더니 원래 연락 안 가면 불합격인 줄 알아야지 전화하지 말라는 핀잔만 들었다.
지갑을 털어서 술 한 잔 마시고 공원에 앉아 있으려니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다.
다 때려치우고 죽을까 싶기도 했다.
(부우웅)
그때 스마트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아빠'.
괜히 기죽지 말라고 사주신 최신형 스마트폰이 눈에 밟힌다. 그러고 보니 이 정장도, 시계도......
울음이 울컥 나왔지만 꾹 참았다. 그래 아빠한테 죄송하다고 말씀드리자. 그리고 다시 해보자. 이렇게 믿어주는 가족이 있으니까.
그새 끊어진 전화를 다시 걸기 위해 잠금을 풀었다.
퍽
무슨 소리가 난 것 같았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랬다.
"어 씨 이거 안 뒤졌네?"
검은 밤하늘이 보인다. 가로등 불빛이 보인다. 그리고 누군지 모르겠지만 시커멓게 그림자진 누군가 날 내려다보고 있다.
"그...... 커륵......"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안 되는데...... 아빠한테 전화해야 하는데...... 엄마도 같이 있을 텐데...... 나 면접 다시 봐야 하는......
시야가 새까맣게 물들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아무것도 없는 어둠 뿐이지만 즉시 이해했다. 나는 죽었다.
"으아아아악! 아아악! 왜! 어째서! 으아아아악!"
아직 아무 것도 못 했는데! 이제 좀 자신 있게 살려고 했는데! 아빠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하지도 못했는데!
그 순간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었다.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생일 선물로 좋은 것도 준비하지 못했는데 그나마 주지도 못 했다.
골목에서...... 무언가에 맞고...... 쓰러졌다가...... 죽었다.
엄마는? 아빠는? 내가 죽었다는 걸 알면...... 안 그래도 어마 몸이 안 좋은데...... 제발 살려달라고 했는데...... 그런데...... 그 사람이......
안 되는데...... 이제야 아내에게 뭘 좀 해줄 수 있을 거 같았는데...... 왜 이런...... 어째서...... 그 미친놈이......
"왜야! 어째서야! 왜...... 끄윽... 으흐으극......"
왜 이렇게 몇 번이나...... 또 몇 번이나......
"소리는 다 질렀나?"
"으어?"
시커먼 그림자가 다가와서 묻는다. 본능적으로 저놈이 원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도대체 왜 이러냐고 묻고 싶었지만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상실감과 박탈감에 대답할 힘조차 없었다.
"이제 4번인가? 아직도 꽤 남았어. 얼른 다음으로 넘어가지."
"그만... 이제 싫어......"
하지만 선택권은 없었다. 시커먼 그림자에게 붙들려 물에 내던져지는 순간. 일그러지고 눈물에 범벅된 얼굴이 보였다.
몇 번이나 본. 시커먼 그림자를 드리우고 내려다보던 미친놈이었다.
여기는 또 어딜까? 처음 보지만 이상하게 익숙한 천장을 보는 게 몇 번 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