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창고

 

잠이 들었던 걸까? 아마 그랬던 거 같다.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지금 어디인지도 생각이 안 날 정도로 몽롱한 정신. 의식이 표류하는 듯 의식이 떠올랐다 가라앉는 느낌.

문득 잠이 깼을 때 느껴진 좁은 잠자리의 느낌과 가벼운 침대의 질감 속에서 병원의 느낌을 겨우 잡아낼 수 있었다. 얼마 전에 입원했을 때의 그 느낌과 비슷했다. 그래 아마 병원인 것 같다.

그런데 아직 병원이었던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옆에서 무언가 소리가 났다.

“우웁! 어우웁! 어웁!

비명이다. 무언가에 가리고, 눌렸지만 비명이 분명했다. 점차 돌아오는 의식 속에서 그것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자다 깼고, 병원이고, 비명이 들린다. 몽롱한 사고는 거기에서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슬쩍 뜬 눈으로 어두운 노란 조명의 빛이 들어온다. 조명 아래로 수수한 벽지와 작은 침대들과 그 위에 누운 사람들이 보인다.

그리고 왠지 시커먼 사람 그림자가 보인다.

검은 사람이 침대에 다가가서 손에 든 베개로 사람의 얼굴을 누르면 깜짝 놀란 사람이 버둥거리지만 힘이 없는지 검은 사람을 밀어내지는 못한다.

검은 사람은 잠시 그 몸부림을 지켜보다 칼을 들어 내리찍었다.

그렇게 빠르지 않게. 강하지 않게. 칼이 얇은 이불을 뚫는 소리와 사람을 뚫는 소리가 겹쳐 들리지 않게.

한 번.

또 한 번.

반응을 지켜보며 여기저기 한 번씩 찔러 본다.

몇 번인가가 지나 더 이상 반응이 없으며 고개를 한 번 갸웃하고, 다시 옆의 침대로 간다.

베개를 누른다. 칼을 든다. 몸부림이 점차 작아진다.

또 다른 침대로 간다.

몇 명인가를 지나 내 옆에 검은 사람이 왔다.

상황을 따라가지 못한 의식이 멍하니 그것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눈앞이 검게 변했다.

숨이 막히는 것을 보니 베개가 얼굴을 가린 모양이다.

여전히 정신이 들지 않아 멍하지만 숨이 막히니까 저절로 몸이 저항하는 것처럼 움직였다.

거기까지 기억이 났다.

“으… 아……”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잠에서 깬 것 같았다.

의식은 아직 꿈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뿌옇기만 한데 놀란 가슴은 진정하지 못하고 쉴 새 없이 두근거린다. 그 괴리감이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하지 못하게 한다.

악몽인가? 너무 피곤해서 그런 걸까? 몇 시지? 꿈 맞지? 내가 지금 어디에 있었더라?

어두운 노란 조명 아래, 여러 사람의 숨소리를 들으며 뭐라도 생각해 보려고 노력했다.

숙소…… 기숙사 숙소…… 그래 기숙사다. 여기는 숙소였다. 기숙사형 학원, 보컬 학원이다. 오전에 보컬 트레이닝을 받다가 돌아온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왜 그렇게 기억이 안 났을까. 잠깐이지만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는 잠깐이 너무 무서웠다.


물이라도 마실까. 그러면 조금 진정이 될까 싶어 일어나려는데 누군가가 방으로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왠지 모르게 무섭고, 긴장돼 자는 척했다.

눈을 감고, 조용히 숨을 고르고, 긴장을 풀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서려는데 그 소리가 들렸다.

“어극! 끄윽!”

억눌린 비명.

끼익거리는 침대의 비틀림.

무언가 찢어지고 뚫리는 소리.

온몸이 얼어붙었다.

움직이기는커녕 머리가 새하얗게 변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멀리서부터 하나씩 하나씩 들려오고, 가까워지는 소리.

조금씩 더 커지는 소리에 도망칠 생각도 못 하고 그저 멈춰주기만 바랐다.

그때 누군가 또 방으로 들어왔다.

“그만해! 이제 그만……”

다행히 그 사람은 말리러 온 사람이었다. 눈을 꼭 감고 제발 저 사람이 살인자를 막아주기를 기도했다.

“아, 진짜… 형도 그만 포기하라니까.”

“이러지 마. 뭔가 방법을 찾자, 응?”

“방법? 찾을 거야. 찾을 건데. 지금은 그냥 좀 둬. 알았어?”

“너 이러다가… 흐어……”

“내가 몇 번 해보니까 이렇게 찌르면 소리를 못 내더라.”

절망감이 밀려온다.

어떻게 하지? 신고를 해야 하나? 도망쳐야 하나? 조금 더 기다려볼까? 혹시 이제 질려서 그만두지 않을까? 혹시 빌면 살려주지 않을까?

“뭐야, 이거?”

바로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놀라 뭐라도 말하려고 했다.

“헉……”

정말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말이 되다만 숨소리만 나오다 그마저도 나오지 않았다.

아픈 것보다도 숨이 막혔다.

“또 보자.”

살인자가 웃으며 말한다.

생각은 이어지지 않았다.



눈이 떠졌다.

그냥 눈이 떠지고 움직일 수 없었다.

가위에 눌린 것은 아니다. 그냥 무서워서. 너무 무서워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다. 두 번이나 칼에 찔리는 꿈을 꿨다. 찔려서 깼는데 또 찔렸다. 그 감각이 너무 생생해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밖에서는 싸우는 듯한 소리가 난다. 다행인 걸까? 적어도 꿈에서 깼다는 증거 같은 느낌이다. 평소라면 불안했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게 긴장을 풀어주었다.

“흐윽……”

아니다. 뭔가 이상하다.

병실인지 기숙사인지 모를 곳.

어두운 조명.

7~8개 정도 되어 보이는 침대.

깊게 잠들어 있는 사람들.

조금 전 꿈에서 봤던 공간과, 그 전에 꿈에서 본 공간과 너무 비슷했다.

다시 누워 이불을 뒤집어썼다. 제발 아무 일 없기를, 꿈이라면 깨어나기를, 꿈이 아니라면 그냥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기를 빌었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자꾸 막지 마, 형. 어차피 진짜 죽는 것도 아닌데 뭐.”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칼을 휘두르던 살인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냥 잠을 깨워주는 거야.”

“허웁!”

억눌린 비명과 칼에 찔리는 소리가 난다.

“나만 못 깨는데 이 정도는 괜찮잖아?”

“끄윽!”

점점 가까워진다.

“허억!”

바로 옆 침대에서 비명이 울리고, 발걸음이 점점 다가온다.

몸이 떨린다. 가만히 지나가라고 숨을 죽이고 있는데, 몸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린다.

눈물이 줄줄 흘렀다. 혹시 울음을 터뜨리면 살인자가 올 거 같아서 참았다. 이러고 있어도 결국 올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잘 참으면 살려줄 것 같아서 견뎠다.

발걸음이 멀어졌다.

다가오던 발걸음이 그대로 지나쳐서 다른 침대로 멀어졌다.

이어서 억눌린 비명과 찌르는 소리가 번갈아 가며 들려온다.

몇 번이나 반복된 소리 후 다시 발걸음이 다가온다.

쿵 하고 울리는 소리가 발소리인지 내 심장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눈을 꼭 감고 제발 빨리 잠에서 깨기를 기도했다.

“까꿍.”

“으……”

이불을 잡아당기며 살인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뻣뻣하게 굳은 몸은 신음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살인자의 칼이 휘둘러지는 순간.

모든 것이 어둠 속으로 무너져 내렸다.

“허억! 허억!”

잠에서 겨우 깨어났을 때는 아직 어두운 밤이었다.

익숙한 침대, 익숙한 공기, 익숙한 천장, 익숙한 책상, 익숙한 방문, 익숙한……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잠에서 깨어났다.

이제 살인자는 없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살인자가 웃으면서 한 말은 잊히지 않았다.



“다음에는 밖에서 한번 보자.”

 


트위터에서 제보 받은 악몽을 수집, 가공하여 박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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