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많이 오던 어느 여름 장마 때의 이야기다.
지금은 흙바닥 놀이터가 별로 없지만 어릴 때만 해도 놀이터는 당연하다는 듯이 흙바닥, 모래바닥이었다.
아이들이 헤집으며 노는 놀이터에는 비가 오면 여기저기 물웅덩이가 생긴다.
물웅덩이가 생기면 또 그 물을 가지고 놀고, 물을 흘러가게 하면서 놀고, 흙을 매우면서 놀았다.
비가 많이 온 다음 날이었다.
놀이터에는 전에 없이 큰 물웅덩이가 생겨 있었고, 이미 많은 아이들이 모여 그 물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기껏해야 아이들 손으로 두 뼘, 깊이도 손등이나 겨우 잠기려나 싶은 물웅덩이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욕조처럼 넓고 손목이 다 잠길만한 물웅덩이가 생긴 것이다.
아이들은 환호하며 이 작은 호수를 꾸미고 놀았다.
한참을 놀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주변을 야금야금 매우기 시작해서 호수를 다시 흙으로 덮는 것으로 이 위대한 역사를 마무리했다.
점심 이후부터 저녁 식사 전까지 이어진 대공사였다.
모두 만족스럽게 집으로 돌아가 흙탕물이 잔뜩 튄 옷 때문에 혼났다.
그리고 또 비가 왔다.
비가 온 후 아이들은 다시 놀이터로 모였다.
또 물웅덩이가 있었다.
어제 묻어버린 그 자리에 다시 물웅덩이가 생겨 있었다.
어제처럼 깊고 넓지는 않았지만 단지 같은 자리에 다시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신기하고 즐거운 사건이었다.
얕고 넓은 물 아래에는 어제 밀어 넣은 흙은 진흙이 되어 끈적하게 쌓여있었다.
바다에 가본 아이들은 갯벌이라며 아는 척을 했고, 다 함께 거기서 조개를 잡는다며 파헤치고, 다시 묻기를 반복했다.
또 한 번 신나게 놀고 난 후에는 다시 흙을 덮어 버렸다.
왜인지 모르지만 물웅덩이는 놀고 난 후 꼭 매우는 걸로 끝내는 것이 당시의 규칙이었다.
모두 즐겁게 집에 돌아가 진흙이 잔뜩 묻은 옷 때문에 혼났다.
며칠 후 또 비가 왔다.
놀이터에 갔을 때는 또 그 자리에 물웅덩이가 생겼다.
신기한 일이었고, 내심 기대도 했던 일이기에 모두가 다시 재미있게 놀았다.
그 후로도 몇 번인가 물웅덩이는 계속 생겼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며칠이 지난 후 비가 오면 어김없이 흙이 꺼지고 물이 고였다.
놀이터 어디에도 그런 웅덩이가 생기지 않기에 아이들의 짧은 기억력으로도 확실히 알고 있을 정도로 같은 자리에 계속 물웅덩이가 생겼다.
장마가 지나고, 태풍이 지나고, 겨울이 지나고, 다시 땅이 녹고 봄비가 왔을 때였다.
또다시 그 자리에는 물웅덩이가 생겼다.
처음에 생겼을 때처럼 넓고, 깊었다.
발목이 잠길 정도로 깊었기에 용감한 아이들은 신발이 젖는 것을 무시하고 물에 뛰어들어 놀았다.
신발을 신은 채 들어가 신발을 다 적시기도 하고, 소심하게 신발은 벗어두고 들어간 아이들도 있었다.
어떤 아이는 슬리퍼를 신으려고 집에 돌아갔다가 붙잡혀 못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그 아이를 통해 어른들도 물웅덩이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항상 생기는 놀이터의 명물이지만 어른들에게는 위험하거나 이상하거나 찝찝하게 느껴진 모양이다.
어른들이 와서 뭐라 뭐라 얘기하더니 며칠 뒤에는 공사장 아저씨들이 와서 땅을 파고 두드리고 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은 경찰 아저씨들이 왔다.
많이 왔다.
경찰차도 왔다.
경찰 옷을 안 입은 아저씨들도 많이 왔다 갔다 했다.
아이들은 놀이터에 왔다가 놀지는 못하고 구경만 했다.
아저씨들은 물웅덩이가 언제부터 생겼는지를 물어보았고, 기억력이 좋은 몇몇 아이가 지난여름부터였다고 말했다.
아저씨의 표정은 심각했다.
어떤 아이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아저씨들이 말하는 것을 조용히 들었다고 했다.
놀이터에 사람이 묻혀있었다고 한다.
사람을 묻기 위해 흙을 파고 덮은 흙이 비가 오면서 가라앉아 물웅덩이가 생긴 거라고.
그리고 시체에서 물기가 빠지고 썩어들어가면서 자꾸 공간이 생겨 아이들이 위에 흙을 덮어도 다시 물웅덩이가 생긴 거라고.
아이들은 아무 말도 못 했다.
그 후로 아이들은 놀이터를 가지 않았고, 버려진 놀이터는 몇 년 뒤에 없어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