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아내가 재빨리 라디오를 끄는 것을 보면 의아해했다. 비상사태를 알리는 방송에서 마지막으로 들린 말은 "그것들은 사람처럼 생겼어요."라는 것이었다. 2.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다가 조금 졸린 기분이라 휴게소에서 차를 세웠다. 산책을 조금하고 돌아왔을 때 차가 출발하는 것이 보였다. 3. 당신이 정말 12년 동안 최선을 다했다는 게 느껴져! 원래는 한 명이면 충분했는데, 여동생도 너무 귀여워서 데려가야 할 거 같아. 4.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드디어 그 지옥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깨달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내 부상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한 의사가 나를 부모님에게 인계하도록 경찰에게 전했을 때는 다시 절망했습니다. 5. 남자는 "위자료는 얼마든지 줄 테니까 이제 그만 이혼해!"라고 소리..
2021년 6월 16일. 오늘 경험한 사소하지만 괴이한 일을 기록한다. 업무 때문에 서울 송파의 모 지역의 빌라를 찾아갔다. 시간은 저녁 8시를 넘긴 시간. 서울이긴 하지만 골목 안쪽이라 인적은 드물다. 찾아간 집은 5층 맨 꼭대기. 꽤나 낡은 건물이라 엘리베이터도 없었다. 계단도 조금 낮고, 천장도 낮은 편이라 올라가는 내내 압박감이 있다. 5층에 도달하여 501호의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드극...... 치익... 취아아아... 카극..... 카그그그그.......] 초인종이 울리고 조금 있다가 인터폰으로 울리는 소리. 수화기를 드는 듯한 소리에서 이어지는 잡음들. [크극..... 카그그극...... 취기익....... 키이이이이.......] 오래된 스피커 특유..
어렸을 때부터 여러 가지 이상한 경험을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부동산에서 청소 일을 할 때의 일입니다. 나름 집에서도 비슷한 일을 해봤기 때문에 익숙했던 탓인지 사장도 귀찮은 방이 있으면 알바인 나에게 맡겨버리는 일이 많았습니다. 확실히 무언가 나온다... 같은 꺼림칙한 일은 피하고 싶을 겁니다. 어느 날, 어떤 맨션을 하나 찾게 되었습니다. [사고 내역은 없지만 입주민이 자주 바뀌는 방] 부동산 정보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5층 건물의 3층에 위치한 방입니다. 예정대로 정해진 시간에 작업을 마치고 최종 점검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어떤 멜로디가 들렸습니다. 17시 알림 같은 건가? 청소를 끝냈다고 전화를 하고 있으려니 작은 진동도 느껴지고, 캉캉 차단기 소리도 들립니다. 겨울이라..
상태가 안 좋다. 구체적으로 어디가 안 좋냐고 하면 할 말이 없다. 아무래도 정신적 문제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고, 정작 나 역시 어떤 상태인지 혼란스러우니까. 그저 정상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 알 수 있었다. 정신과...... 정신병원을 가야 한다. 아마도 분명...... 정신병원으로 알고 도착한 곳은 예상과 조금 다른 곳이었다. 병원이라기보다는 유치원에 더 가까운 모습. 혹시 아동전문인 걸까? 다행히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다. 어찌어찌 물어물어 8층의 직장인 대상 상담실을 안내받을 수 있었다. "어떻게 오셨나요?" "어, 상담이 좀 필요해서요." "어떤 문제가 있으시죠?" "네? 그건 정확히 모르겠는데......" "여기는 처음 오시나요?" "네, 당연히 처음......" "저를 보는 것도 처음이시..
1. 우리가 함께 산 지 두 달 정도 되었습니다. 그녀는 아직 나를 눈치채지 못해서 다행입니다. 2. 저는 최초의 로봇 시민이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이 붉은 구동액이 흐르는 껍질을 파헤치고 안쪽에 있는 회로를 보여주면 의사들도 내 말을 믿을 겁니다. 3. 폐건물을 샅샅이 조사한 끝에 벽돌로 덮인 문을 발견했습니다. 지도를 살펴보니 이게 유일한 출구인 모양입니다. 4. 내가 이사 가는 날, 나는 이사오는 사람에게 "이곳 사람들은 정말 부드럽다."라고 말했다. 실제로는 질겼지만 그렇게 말했습니다. 5. 언제 죽을지 알면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을 줄 알았어. 하지만 죽음이 나에게 부서진 회중시계를 건낸 이후 하루에 두 번씩 공포에 시달리고 있어.
좀처럼 잠들기 어려운 밤이다. 잘 때다 지났지만 이상하게 정신이 또렷하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지만 오늘은 정도가 조금 심했다. 일부러 눈을 감고 열심히 잠을 청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한참을 뒤척이다 옆으로 돌아누운 채 눈을 뜨고 말았다. "흡!" 정신을 차렸을 때는 식은땀을 흘리며 천장을 보고 있었다. 뭐였을까. 분명 사람 같았는데...... 방에 있을 리 없는 낯선 사람. 명암이 확실하지 않은, 색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 그리고 그 커다란 눈. 귀신이라도 본 걸까? 아마 잠이 안 온다고 뒤척이나 어느 순간 잠이 들고, 악몽을 꾼 모양이다. "후우......" 겨우 잠들었는데 악몽 때문에 깨다니...... 아쉬운 일이다. 바로 저기에 귀신이...... "허읏!" 어느새 또 천장이 보인다. 뭐였지?..
어느 날 한 남자가 여신을 보았다. 언제나 밝은 후광에 감싸여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여신을 보았다. 눈부신 빛 속의 여신은 언제나 그의 경외를 받았으나 날이 저물기 직전 잠시 빛이 흐려지는 순간 그는 여신의 보았고 경외 대신 사랑을 바쳤다. 하지만 여신은 인간에게 시선을 주지 않으며 인간의 목소리는 신에게 닿지 않기에 남자의 마음은 메아리보다도 의미 없었다. 실의에 빠진 남자는 서서히 말라갔고, 차라리 죽기를 결심한 어느 날 악마가 나타났다. 악마는 남자의 수명을 오 년 바치면 그 여신을 집에 데려다주겠다 하였다. 남자는 죽기 전의 목숨으로 잠깐이라도 여신을 보기 위해 악마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악마는 내일 아침이면 여신을 볼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남자는 자신이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
1. 악몽 속에서 실종된 딸이 갈라진 벽 틈으로 살려달라고 소리 지르고 있었다. 나는 깨어나자마자 얼른 달려가 벽의 틈에 석고를 발랐다. 2. 거친 중년의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는 소년을 향해 사제는 "제가 주님을 대신하여 이 아이를 구할 힘을 주소서!"라며 소리쳤다. 소년은 침대에 묶인 채 단지 후두염일 뿐이라고 하고 싶었지만 갈라진 목에서는 괴상한 울부짖음만 나올 뿐이었다. 3. 혼자 살게 된 이후에도 블루투스 헤드폰을 써고 있으면 그다지 외롭지 않았습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내가 헤드폰을 쓰고 다니지 않았으면 집에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더 빨리 깨달았을 겁니다. 4. 최후의 심판대에서 그는 "나는 그녀를 죽이지 않았어요!"라고 소리 지르고 있었다. 사형집행인은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확신에 ..
오늘은 다른 학교 친구를 보러 그 학교로 놀러 갔다. 자주 볼 수 있는 친구는 아니라 그런지 아니면 다른 학교가 낯설어서 그런지 조금 이상한 기분이다. 음, 전자보다는 후자의 이유가 더 맞는 것 같다. 그 학교는 멋있는 걸로 꽤 유명하니까. 통유리로 된 외관에 한 번 놀라고, 박물관 같은 내부 인테리어에 또 한 번 놀라고, 전시회처럼 걸린 그림들이 너무 멋져서 또 놀랐다. 정말 유명할만한 학교다. "야, 저기도 뭐 있다!" "뭐야? 와! 이건 어떻게 그린 거지?" 여고생들에게 새롭고 흥미로운 게 가능한 장소만큼 멋진 게 또 있을까. 한참을 꺄꺄 소리를 지르며 뛰었더니 결국 친구가 한 마디 했다. "야! 니들은 나 보러 온 거냐? 학교 놀러 온 거냐?" "당연히 너네 학교 놀러 왔지!" "야 이 씨!" 사..
1. 제 웨딩드레스는 흰색에 금색으로 장식을 달았습니다. 그 아래 피부는 검고, 파랬지만요. 2. 룸메이트가 3주째 방에서 나가지를 않습니다. 우울증인 건 알지만 냄새가 너무 심해서 어떻게든 해야겠습니다. 3. 나는 항상 그녀의 눈이 아름답다고 생각했어. 근데 지금 거울을 보니 나한테 더 잘 어울리네. 4. 아이의 몸에 어른의 뇌! 그리고 그 외에 많은 것들을 냉장고에 담아놨습니다! 5. 그녀는 불안에 떨며 급하게 차에 타 문을 잠갔다. 내가 이미 뒤에 타고 있는 것은 눈치 못 챈 모양이다.
민들레 씨앗을 본 적 있는가. 하얗게 번져나가는, 작은 생명들을 본 적이 있는가. 한없이 가볍고 작은 그 안에 한 송이 꽃을 품고, 또 한 다발의 씨앗을 품고 날아가는 최초의 가능성을 본 적이 있는가. 탐스러운 민들레 한 송이가 풍성한 씨앗을 만들고, 작은 바람이 그들을 날려보낸다. 그중 하나의 씨앗이 나뭇잎을 스치고, 새의 부리를 피하고, 개미에게 물렸다가 다시 날아올라 작은 돌풍에 휩쓸렸다. 돌풍에 끌려간 씨앗은 어둡고, 좁은 틈새에 떨어져 잠시 어찌할 바를 몰랐으나 약간의 물기에 의존해 싹을 틔우고, 예상외로 부드러운 땅에 순조롭게 뿌리를 내렸다. 조금 더운 바람은 지금이 자라기 좋은 때라는 것을 알려주고, 뿌리내린 땅에서 솟아오르는 양분 넘치는 물이 그 성장을 응원한다. 민들레는 그 좁고 어두운 ..
아귀거죽은 속이 비어 겉껍질만 있는 요괴다. 이 겉껍질은 넓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어 원하는 모습을 흉내 낼 수 있다. 다만 얇기도 얇아서 자세히 보지 않은 눈에 띄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통은 혼이 빠지고 남은 백이 변해서 만들어지거나 특정 장소에 쌓인 혼탁한 기가 변형되어 만들어진다. 하지만 만들어진 장소에 머물지 않고 바람에 날리듯 돌아다녀 정확히 어디에 있고, 어디에 없다고 하기 어렵다. 보통은 허공을 날아다니다 기가 약한 사람을 찾으면 옆에 붙는다. 속이 빈 녀석이라 언제나 자기 속을 채우고자 하는 식탐이 있는데, 주로 먹는 것은 산 사람의 생기다. 그렇다고 직접 빼앗거나 훔칠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기를 흘리도록 유도하여 주워 먹는다. 기가 단단하지 못해 쉽게 흩어지는 사람..
1. 상상 속의 친구가 사라지기 시작했을 때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그때는 이미 그녀의 말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대신 그녀의 이름이 적힌 정신과 약물을 봤을 때서야 그녀가 아닌 내가 사라지는 중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2. 퇴근하여 집에 돌아왔을 때 여자친구의 웃는 얼굴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나머지는 어디에 뒀는지 까먹었지만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3. 15년 전 실종된 동생을 다시 만났어요. 검시관 일을 하다가 만난 게 아쉬운 일이지만...... 4. 캐리어가 공항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자 금속 탐지기가 울렸다. 설마 그 어린아이가 다리를 철핀으로 고정하는 수술을 받았을 줄 어떻게 알았겠어. 5. 내 물건에는 똑바로 내 이름을 새겨놓으라고 배웠다. 부모님이 우는 것을 보니 팔다리 하나하나 ..
1. 최근 소녀를 고문 중이라는 트윗이 매일매일 새로운 내용으로 업데이트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 것은 바로 어제입니다."라며 경찰은 아직 딸이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2. 아들이 새로운 곰 인형을 잘 가지고 노는 것 같아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다만 눈에 빛을 비추면 동공이 수축하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3. 나는 해변에 앉아있는 예쁜 소녀들을 지나치면서 저렇게 예쁜 얼굴을 가진다면 어떨까 궁금해했었다. 그런데 막상 소녀의 얼굴을 가져도 피 냄새를 맡은 갈매기들이 몰려드는 것 말고는 딱히 재미가 없었다. 4. 고양이가 방금 새끼를 두 마리 낳았어요! 오늘 밤 먹을 게 늘었네요! 5. 나는 평소에 귀머거리 조카를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내가 그 녀석의 부모를 죽이는 동..
악령이나 저주 등이 자는 사이에 나를 해치지 않을까 하는 공포는 매우 보편적이다. 때문에 이를 방어하기 위한 결계술도 흔하고 종류가 많은데 그중에서 가장 간단하고 보편적인 것이 인형을 활용하는 것이다. 인형은 오컬트적으로 봤을 때 생명이 없는 것에 형상을 부여하여 현실의 것, 혹은 상상의 것을 모방하여 존재하지 않던 존재를 구현하는 원시 주술에 해당한다. 때문에 간단하게 형태만 구현한 인형으로도 방어 결계의 기본이 만들어진다. 사용법은 생각보다 별거 없는데 그냥 인형을 머리맡에 두고 가볍게 말을 거는 정도면 된다. 말을 거는 것은 대상을 의식 있는 존재로 인식하는 것으로 역시 원시 주술에 해당한다. 머리맡에 두는 것은 인형에게 나의 잠자리는 부탁하는 의미가 되어 이제 인형은 의식있는 파수병이 되어 악령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