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창고



J는 살짝 밀려드는 한기에 잠에서 깨고 말았다.
안 그래도 요즘 잠을 잘 못 자는데 이렇게 깨버리니 오늘은 잠들기 틀렸나 보다 싶었다.

"아..."

피곤 탓인지 방이 건조한 탓인지 목이 바짝 말라 갈라지 목소리가 났다.
밀려오는 갈증에 J는 물을 마시기 위해 거실로 향했다.

방에서 나와 생수 하나를 꺼내 컵이 따르고 있으려니 어질러진 거실이 눈에 들어온다.
아직 엄마는 들어오지 않은 걸까.
그러고 보니 오늘 야근이라고 했던 것도 같다.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모습이 갑자기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몇 년 전에 언니가 집을 나가고, 그 후 1년도 지나지 않아 부모님이 이혼했다.
언니가 사라진 후에도 그랬지만 아빠가 나가 버린 이후로는 집이 너무 넓은 느낌이라 무서웠다.
하지만 두 분은 언니가 없어진 것이 누구 탓인지를 가지고 매일 싸우셨기 때문에 차라리 후련하기도 했다.

J는 오랜만에 언니와 아빠를 떠올리고, 가족들이 모두 있을 때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순간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누군가 분명 보고 있다는 뚜렷한 감각에 놀라 돌아보니 그곳에는 베란다가 있었다.

베란다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누군가가 있었다.

"흐윽!"

깜짝 놀라 주저앉았다.
심장이 쿵쿵 뛰고, 몸이 굳어 움직이지를 못 했다.
잠시 허둥거리던 J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다시 베란다를 내다보았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J의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베란다의 센서등이 켜져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누군가 거기에 서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 짧은 사이에 그 사람은 어디로 간 것일까 하는 의문이 남았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아무 일도 없자 그제야 J의 긴장이 조금씩 풀렸다.
이 집에 이사할 때 귀신이 나온다는 말도 못 들었고, 사고가 있었다는 말도 못 들었다.
아마 착각일 것이다.
그러고보 면 그 모습은 J 자신을 닮은 것 같은 기분이다.
아마 창문에 비친 자신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지금도 켜져 있는 센서등이 이제는 오히려 안심이 된다.
고장 난 모양이다.

"후우......"

J는 긴 한숨을 쉬고 거실을 조금 정리했다.
쓸데없이 무서워한 자신이 조금 우습고 한심했다.

"으샤."

바닥에 널부러진 빨래를 모아 일어나던 J는 베란다에 서있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비명도 못 지르고 굳어진 채 눈을 마주치고 있던 J는 다음 순간 그것이 베란다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고 허탈함에 주저 앉았다.
그리고 다시 입을 딱 벌리고 굳어버렸다.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서있는 그대로였다.

몸을 부들부들 떠는 J를 잠시 지켜보던 여자는 갑자기 비명이 지르는 시늉을 하더니 무언가에 떠밀린 것처럼 난간 너머로 떨어졌다.

J는 그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갑자기 모든 것이 무서워졌다.
빨리 이 집에서 도망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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